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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중딩들의 슬기로운 학교생활

by Drivenlife.1 2023. 3. 11.

이제 중딩맘으로 아들을 키우고 있다보니
알고리즘에 올라오는 관심가는 영상 중하나를 보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한국의 내 부모세대들은
무조건 반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라고 하셨다.
그런데 오은영쌤이 확실히 개념을 잡아주셔서 너무 좋았다.

https://youtu.be/yNWm1EI_q38

캐나다와 한국에서 아이를 반반씩 초등학교를 보내었고
언어적인 문제 때문에 항상 학교에 적응 할때는
내가 제대로 적응하도록 돕기위해서
학교를 자주 찾아갔다.

가서 상담을 하고 조언을 듣는데
캐나다 학교와 한국학교의 다른점을 알게 되었다.

나는 캐나다 교육이 무조건 좋다 옳다라는 생각은 안한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별로인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가지 충격적이면서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밴쿠버 공립학교 교장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캐나다 교육은 아이들이 커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를 알고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사회에서 리더로 키우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캐나다 교육은 아이들이 커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를 알고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사회에서 리더로 키우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캐나다 교육은 아이들이 커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를 알고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사회에서 리더로 키우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라고 하였다.
나는 그때 안좋았던 일로 언쟁을 하던 중이었지만
그 상황에서도 공교육 자체 목표가 저러하다면
나쁘지 않겠다 라는 생각을 순간 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내 아이가 커서 편견이나 편협한 사고에 갇히는게 아니라
오픈마인드로 유연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교육에서도 아이들에게 매순간 선택을 하도록 하고
스스로 사고하도록 한다.
물론 한국의 교육시스템과 비교하면 굉장히 허술해 보이고
느슨해 보일 수 있지만 초등학교에서는 충분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업을 할 마음이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내몰고
시험 성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건 아이들의 창의성을 다 퇴화시키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떼만 해도 영어 단어 안외워가면 손바닥을 맞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인신공격을 한다던가
수치심이 생길 수 있는 단어나 행동들도 선생님들은 했다.
그게 당연히 중요하지 않을때 였으니 이해가 간다.

근데 한국은 그렇다.
그렇게 자란 어른들이 지금 사회의 중심이 되어있으니
모든 시스템은 구식사회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는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소수부류는 한국의 미래는 없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국가 성장 자체가 없거나 굉장히 미비한 상태에서
성과 지향적인 시스템을 추구하고 몰아부치니
세계의 빠른 변화에 어떻게 선두해 나갈 수 있단 말인가.


내 주변만해도 아직도 대구 범어동으로
40년이상된 오래된 집을 구해서 이사간다.
아이 공부시키러
아이들은 새벽 2시까지 학원을 다닌다.
주말도 없다.
방학에도 일주일 제외하고는 다닐 수 없다.
학원을 빼먹으면 진도가 쳐져서 아이 스스로가 빠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캐나다의 아이들은 중학교까지도 사실 프리하다.
스포츠나 음악 같은 것들을 배우고
독서나 부족한 부분들을 배우기는 하지만
사교육에 매달리는 부류들도 모두 중국인 한국인들이다.


나는 완전 반대편에 있는 엄마로써 그부분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멀리서 보니 절대 공감대가 안생긴다.


한국에서 그 과열경쟁에서 힘들어 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맘이 짠하다.
그런 부분은 너무 화가 나는 부분이다.
상위 몇프로에게만 기회가 주어지고

https://youtu.be/vUb0t0ghlwE


지금 나는 아이와 함께 가족이
미국과 캐나다 횡단을 계획하고 있다.
물론 타의반 자의반이다
그래서 부족할 부분들을 찾아보기 위해 정보 수집중이었다.
그리고 내가 알아야 하고 기억할 부분들을 기록으로 남긴다.


준비를 하고 미리 머릿속으로 셋팅을 하기 위해서이다.
노는것 같지만 절대 놀아서는 안되는 소중한 시간을 사용하기 때문인데
그 와중에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의 영상을 보게 된 것이다.

사실 다른사람들이 사교육해야해 그러면서
우르르르 간다고 해도 내가 싫으면 안하면 그만인데
나도 내 아이교육에 대한 대안과 대책이 있어야 한다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줄 어떤 정보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튼 지는 7년 동안 캐나다에 이민을 했지만 아이와 함께 매년 한국을 들어갔다.
내 자체가 공부를 시키는대로 하지 않는 아이였기도 했고
좋은 학교를 진학한 적도 없었고
그건 내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애시당초 할 수 있는 것들 부터 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현대무용을 배우다가
부산에 동아대학교 입학을 했는데 학교를 가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배웠던 무용이 나를 오래 살게 하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몸이 부서져라 연습하고 노력해도
타고난 팔다리 긴 아이들 비율 좋은 아이들
예술적 감각을 이길 수 없겠다라는 판단에서
비싸게 레슨받고 성장기에 먹지도 않고 다이어트만하고
작품 연습만 매일 매일 하루 종일 했다.
타고난 아이들은 놀러다니고 해도 나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리고 입시를 치고도 이건 내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몸에 멍이 들었고 10년도 안되서 병걸려 죽을것 같았다.

실제로 한국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지인은
갑상선암이었는데 아주 어릴때 부터 정말 최고에게 무용을 배우고 활동을
15년이상 했다고 한다.
20대에 암이라니 .. 돈이 많아도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피부가 일어 서더라
뭐든 한국은 즐기기 보다는 타이틀, 명예, 얼마나 비싼지에 가치를 두고
점수를 측정하니 그거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그 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네일아트를 시작했는데 들어간 노력 , 돈에 비해서 결과나 너무 좋아서
그길로 쭉 가려고 대전과 서울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해외 대회도 다니면서 매진했다.
그런데 그 일도 마찬가지다. 모든 미용이 비슷하다.
남을 아름답게하지만 본인의 몸은 내팽겨쳐야한다.

네일아트 원장님은 일찍 시작하셨는데 자궁암, 그리고 다른분은 만성 위염, 오십견
모두가 내가 원하는 미래를 살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 그만두고 공부해서 편입을 해서 경영학과에 갔다.
대구에 있는 영남대학교에 진학했다.



이것 저것 다 해보고 공부를 하니 공부만큼 쉽고 돈이 적게 드는게 없었다.
학원비 1년치를 내도 다른거 배울때 한두달 레슨비라서
너무 부담도 없었다. 정말 부담없이 공부했다.
그러나 부족한 내 지식을 채우기에 조바심이 들었지만
급하다고 되는게 아니라서 매일 꾸준히 공부했다.




영남대학교 상경대는 학생수가 3천명 이상이었다.
부전공까지 합치면 그 이상이었다.
누가 교수이고 학생인지 분간이 안되는 인파였다.
그래서 나는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때 이 수많은 아이들은
12년 초중고 열심히 공부해서 왔겠지
그러면 나보다 엄청 똑똑할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늘 부족한 느낌이고 쫓아가기 바빴다.
그래서 매일 수업들은 내용을 복습하고 다시 봤다.
길게 하지는 않았다. 길어야 2시간 정도였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시험을 쳤는데
내가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황당했다. 받을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장학금이라니
전액은 아니었지만 반정도였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싶었다.
그러면 저 수많은 아이들은 그냥 공부하는 척을 하는 것인가
나도 저들과 있어도 떨어지지 않는구나 생각을 했다.


그런데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또다른 의구심이 생겼다.
다들 엄청 준비하고 공부하는데
취업할 곳이 없고
취업을 해도 월급이 정말 작았다.
그러던 중에 영어를 공부 하면 더 경쟁력이 있을까 하고
학교 휴학을 하고 6개월 정도 영어 공부할결 영어 선생으로 알바를 시작했다.
그런데 원장님이 너무 허술하게 가르치는 것을 보고 답답해서
내가 직접 작은 교습소를 차렸다.
아이들이 한 두명에서 많아졌다.
하루 4시간 일하고 200만원을 넘게 벌었다.
월세는 17만원이고 중고로 사온 책상과 내가 쓰던 책상
프린트기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매일 아이들 가르치고 복학을 했다.
그러다 조금 더 벌고 싶어서 과목을 하나 더 늘리니
같은 시간 일하고 400만원 정도를 벌었다.


수학과목은 친동생이 가르쳤기에
고맙기도하고 가족이라서 버는 거에 반을 줬다.
그렇게 가르치니 이게 공부와 취업과
돈벌이가 전혀 다르구나를 알게 되었다.



학교를 어디 나왔고
얼마나 초 중 고 때 공부했느냐가 그닥 중요하지 않구나를 크게 느꼈다.
왜냐면 내가 진학했던 학과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은
원래 고등학교 다닐때 고려대 간다고 준비했던 아이였다.
걔를 처음 만났을 때는 주눅들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장학금을 받았으니 많이 자신감이 생겼다.


스스로 증명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들을 키우면서 학교 수업빠지는 것에 대해
다른 이유가 분명하다면 절대 개의치 않는다.
지인들은 아이 학교 어쩌냐며 전전긍긍하는데
나와 반대되는 사고다.

그들은 내가 볼때 그닥 삶에 만족하며 살지 않기 때문이다.
한양대, 이화여대 등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살아가는 형태가 그렇게 멋지거나 닮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지금 초 중학교 때는 정말 아이에게
차고 넘치는 경험을 하게 하는게 정말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아이에게 해야할 이유가 주어졌을 때
그런 경험치가 높은 아이들은 미친듯이 집중하고 몰입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2 달 동안 계획하는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내용들을 정리해본다.
분명 이것들이 나에게도 또 다른 가르침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