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하게 살았고 남들보다 조금 일찍 결혼한 것 외에
특별히 우수했거나 부족한 부분 없이
노멀한 인생을 살았다.
단 한가지, 성공에 대한 갈망, 낙관적, 할수있다 라는 자신감과 자만심이
근거 없이 가득했던 것 같다.
어릴때 위인전이나 전기를 읽은 탓인 듯하다.
왜 탓이라 하냐면 책에 담긴 내용이 다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미화 되었거나 주인공이 이미지나 사회적 배경이나
여러 정치적 이슈로 인해서 글에서 삭제 되었을 수도 있고
완전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그렇듯
그냥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믿었다.
그래서 항상 노력하고 애쓰면 된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중꺽마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대단하게 성공한 사람들도 중간중간 고생하고
힘들도 고단한 삶이 었지만 결국 잘 되었지 않냐 라는 마음로
항상 극복하려고 했던것 같다.
그런데 내삶은 책처럼 되지 않았다.
아니 내마음이 더이상 긍정적이지만은 않더라.
삶이 시궁창인데 무슨 핑크빛 꿈을 꾸고 행복을 떠올릴 수 있으랴.
나중에는 결혼이 문제였을까
내가 문제였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문제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그런 시기를 지나면서 책은 완전히 멀리했다.
20대가 되면서 미친듯이 책을 놓지 않고 살았던 내가
마치 이것 만큼은 해야해 하면서
텔레비전은 안보고 책을 보는것으로 완전히 적용했었는데 말이다.
You can’t conne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rd.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스티브잡스도 스탠포드 대학 졸업연설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과거를 되돌아보며 점을 연결 할 수 있다고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들을 연결 할 수는 없다고
인생 살아보니 참 맞는 말이다.
당시에는 도대체가 무슨일이 내 인생에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때가 많지만
결국 나에게 도움되고 배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일어났었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정말 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 몇가지 있다면
그것은 책,연애, 결혼, 출산, 이민, 네트워크마케팅사업 그리고 소셜마케팅 일것이다.
지금 보면 10대에 일어났던 것들은 거의 감정이나 사건으로 기억되지 않을 만큼 사소한 것들이 되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 잠재의식에는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가정교육, 부모님의 정서, 사고방식 등 알게모르게 나의 세포로 자리메김 하고 있고
어릴때 교우관계, 나의 생각들이 커가면서 어떤 일들은 선택할 때나 방향을 결정지을때
사회 초년생일때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거의 그런 생활방식이나 사고를 하지않는다.
갈아치웠다고 할 만큼 다른 사람으로 살고있다.
어릴때의 내 모습이 거의 없다.
부끄럽지는 않지만 철없던 시절 , 사랑받으면서 자라다 보니
사회생활을 하는데에 있어서 불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깨닫는 즉시 바로 행동패턴을 바꿔왔다.
여자로 태어났지만 야망은 남자들 못지 않게
아니 오히려 더 이겨먹으려고 했던 부분들이 적지 않았고
멋모를 때는 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살았지만
결혼 후 출산까지 하고 나니 세상 내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졸부든 금수저든 기업가든 그런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 길로 들어서기 까지 분명 남모를 노력을 했을 것이고 그랬기에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뜻이다.
그것도 30대가 되어서 깨달았으니 정말 모르고 산 시절이 길었다.

특별히 어릴때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공사에 근무하셨고 퇴직 기간도 연장이 되어서 오히려 부모님들은
자식들 모두 출가시키고 나름 여유있는 삶을 보내시고 계시다.
그리고 아버지가 입사하면서 부터 시작했던 양봉업이 본업보다 커지면서
나름 안정된 가정에서 살았다.
지극히 평범한, 부모님들도 정말 주변분들이라면 모두 부러워 할 만큼 좋으신 분이시고
사람들도 항상 주변에 많았다.
그게 나는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정작 나는 굉장히 모나고 까칠한 성격으로 태어난 듯하다.
지금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다.
친동생이나 어릴때 나를 본 사람 말고는 전혀 상상 불가의 모습이지만 그랬다. 19살까지
사람은 고쳐 쓸수 없다
라는 말을 종종 쓰는데
자기가 고치려고 하면 고쳐진다 라고 반박하고 싶을 정도다.
누가 자기를 고치려고 하면 안하려고 하는게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에 1표이다.

그렇게 어릴때 꿈만 꾸던 나는 세상의 풍파를 이겨내다보니
정말 피부만큼은 타고났는데
어느새 늙고 나이가 들더라.
25살에도 내 나이가 이미 너무 많은 것 같고 삶이 불투명해 보이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가 참 좋았다.
심플하게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호의호식하면서 내조하면서 사는게 나의 꿈이었다.
현모양처, 그런데 전혀 내 성향과 맞지 않는 꿈이 었다.
늘 새로운걸 배우고 도전하고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고 구경하고
다양한 사람 만나면 만날 수록 에너지가 생기고
호기심으로 더 그들과 가까워지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좋은건 배우고
나쁜건 안해야지 하면서 살아갔다.

사회적으로 성공도 하고 싶어서
전문기술을 배워서 서울에서 제일 핫했던
압구정에서 일을하면서 외국대회에도 출전하고
다양한 커리어를 쌓고 있으면서도
연애도 열심히 했다.
아니 그냥 당연한 것이었다.
연애를 하면서도 내 할일은 계속 했다.
짬내서 만나고 쉬는날 면회가고 뭐 그런식
그렇게 내 인생의 전부 같았던 시절은 한순간에 끝이 났다.
새드엔딩이 아니라 배드엔딩이 되었고
정처없이 마음이 흘러갔고 갈피를 못잡았다.
그와중에 새로운 커리어를 위해서 편입을 해서 경영대학에 진학했다.
거기에서도 늘 나는 늦게 시작했으니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방법은 매일 매일 정해진 양을
미루지 말자였다.
그렇게 했더니 수천명 대학생 중에서 장학금을 받는 행운도 얻게 되었다.
그러고 영어를 더 제대로 하겠다고 휴학을 했고
휴학은 한 시기에 영어학원에 취직을 했다.
거기에서 배울게 너무 없다라는 생각이 들자 1달만에 그만두고
상가에 장소를 얻어서 개인적으로 내가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다시 학교에 복학했다.
학원은 계속 운영하면서 수업을 들었다.
당연히 성적은 높게 나오지 않았지만 드는 생각은
이게 지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게 맞나 싶었다.
하루에 3시간 일하고 300만원을 벌었으니 얼마나 쉬웠을까.
그래서 25살에 혼자가서 새차도 사고
사고싶은거 놀고 싶은거 다하면서 동생들 고용해서 학원수업을 늘렸다.
원생도 늘었다.
금액은 더 늘어났고 500만원도 벌었다.
이때에는 돈이 중요하다 생각하지도 않았고 학생이었던 나는 200만원만 있으면
원하는 삶을 다 누렸다.
동생들에게 커피도 사주고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내가 사고싶은거 사고 차할부도내고 유지도하고 말이다.

그래서 남동생을 고용해서 수학선생으로 앉히고 나는 놀러다녔다.
적당한 위임이 아니라 그냥 내팽겨친것이다.
그리고 동생은 아마 나와 함께 해서 좋았을텐데
누나가 매일 맡겨두다 시피하고 놀러다니니 뭐 좋았으랴
오너가 없는 곳은 절대 잘되지 않는 법이다.
그렇다, 나는 그때부터 인간관계를 배우기 시작했다.
배움에는 항상 순탄치만은 않듯이 굉장히 다이나믹했다.
갈등이 깊어질 수록 , 여러사람들과 갈등이 있을 수록
골머리가 아픈법이다.
그렇지만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왜냐면 나는 초긍정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들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몰랐다.
사실 캐나다에 이민 와서도 내가 네트워크마케팅 사업을 막 시작할 때만해도
전혀 감지가 안되었다.

그렇게 일 열심히 하면서도 허한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은
결혼할 사람을 만나면서 정리가 되는 듯했다.
실상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나는 나 혼자서 마음을 못잡는 사람이었는 듯하다.
누군가 옆에 늘 있었고 그럴 때 더 내 할일을 더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싱글이었을때 두려움 없이 일을 잘 헤쳐 나갔어야 했는데
참 그부분이 아쉽다.
그렇게 나는 우연히 인연을 만났고
우리는 잘 맞는듯 했고 그렇게 평생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번개불에 콩구워 먹는 듯한 속도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내가 괜찮아 보였을 것이다.
어린데 알아서 일도 하고 학교도 잘다니고
남자친구들 뿐이었지만 친구들도 많고
자기관리도 잘하고
돈도 잘쓰니 말이다.
그래서 항상 미래를 꿈꾸고 그렇게 살았다.
그는 하루 아침저녁 운동을 하고 운동후 무조건 휴식
그리고 낮에는 개인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내가 학교를 마치고 오면 커피한잔 하거나 밥먹고
나는 학원으로 수업하러 갔다.
아주 평화로운 삶이지 않는가.
둘다 술이라고는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해서 조금 마셨지만 그후로는
술도 거의 안마셨고
찜질방이나 가고 드라이브가고 그게 전부였다.
각자 바빴으니 말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 흠잡을데가 없었고
헛된 생각일지라도 각자의 시간을 누구보다 알차게 보내고
열심히 사니까 참 괜찮다라는 생각을 했겠지
그렇게 결혼을 하자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건 나에게도 너무 당연해서
이왕이면 호랑이띠였던 그 해에 낳자고 해서
결혼후 바로 임신과 출산!!!
26살이었다.
그는 30살
우리는 둘다 딱 필요한 결혼 예물을 하고
신혼집도 둘이 알아서 구하고
나머지 돈은 다 저축
임신을 했어도 나는 아이들을 여전히 4시간만 가르치면 되었다.
실제로는 3시간이었지만 그렇게 벌고 400만원 정도 수입이었다.
그래서 나는 400만원을 모두 저금했다.
그가 버는 돈이 더 적었어도 우리가 생활하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그렇게 감사하고 살았어야했는데 자만했다.

임신중에 태교일기도 같이 쓰고 미래에 뭘할지도 같이 계획하고
여전히 건강한 라이프를 즐겼다.
남자를 볼때 술, 담배, 게임, 친구를 조절 하느냐 안하느냐였는데
아주 그부분에 적합했다.
그부분은 변치않는다.
항상 가정을 우선으로 하고 나와 아이가 우선이다.
그래서 덕분에 지옥같이 힘든 시기에도 우리는 갈라서지 않고
말로만 이혼을 천만번 더했지만
지금 잘 살고 있다.
부부중 누구하나는 정말 바르게 행동해야 하는것 같다.
옳은건 정말 좋은 영향력을 주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을 했어도 나의 열정과 자만은 사그라 들지 않았고
일을 오히려 더 벌렸다.
그 시작은 나를 우리 가족을 시궁창으로 밀어 넣게 했다.
과유불급이 불러일으킨 재앙들은 다음 포스팅으로 이어서 하겠다.
인생이란